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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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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로 이미지(1)

의암로

  • 기 점: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산92-9
  • 종 점:전북 장수군 장계면 삼봉리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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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로  상세내용

2018-06-14

의암로는 논개생가가 있는 장수군 장계면 주촌 마을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이다.
의암로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 때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은 논개(論介 ?~1593)를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논개의 성은 주씨(朱氏)이고,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진앙성(晋陽城) 촉석루(矗石樓) 아래 남강(南江)가에는 가파른 바위 하나가 깊은 강물 속에 솟아있다. 물에서 그 바위로 건너가려면 한 걸음 밖에 안되지만 그 위에서 한 발짝이라도 헛디디면 깊은 강물 속에 빠질 수 있는 곳이다. 계사년(癸巳年)에 왜적(倭賊)이 침입(侵入)해 오자 창의(倡義)를 해 싸웠으나 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성이 함락되자 성 안의 백성들은 대부분 목숨을 부지하려 애썼지만 관기(官妓)논개(論介)만은 왜적을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원수(怨讐)로 여겨 순국(殉國)키로 맹세(盟誓)하고 몸단장을 곱게 한 뒤 이 바위 위에 날아갈듯 우뚝 서 있었다. 여러 왜병(倭兵)들은 이를 바라보고 침을 삼켰지만 위태로운 지세(地勢)를 겁내 감히 접근(接近)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왜장(倭將) 한 명이 뛰어 건너가 뭍으로 논개를 꾀어 내려하였다. 논개는 짐짓 미소를 지으면서 왜장을 맞아들인 뒤 그를 껴안고 강물에 빠져 죽었다. 이로 말미암아 후세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고 의롭게 여겨 마침내 의암(義巖)’이라 두 글자를 새겨 그녀의 의열(義烈)을 정표(旌表)하였다고 한다.

()롭도다! 이 바위여! 이 어찌 주역(周易)에서 이른 바 개우석(介于石)’이 아니면 위시(衛詩, 詩經)에서 이른 바 불가전(不可轉)’이 아니리오. 그녀는 남쪽 고을 진주(晋州)의 한 창기(娼妓)로서 마침내 스스로 의()를 쫓아 죽을 곳을 얻어 이처럼 대장부(大丈夫)의 열렬한 사업(事業)처럼 처리(處理)함으로써 당시 여염(閭閻)집 부인(婦人)들을 부끄럽게 하였구려. 이는 참으로 이 나라의 깊은 사랑과 두터운 은택(恩澤)이 백성들로 하여금 감동(感動)하여 분발(奮發)케 한것이리라. 마치 남국(南國) 부인네들이 문왕(文王)의 인정(仁政)에 감화()되어 강한(江漢) 땅의 풍속(風俗)을 바꾸게 한 것과 같지 않다고 한다면 어찌 이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의암로는 앞서 언급한 내용을 토대로 의암 주 논개의 의열심으로부터 장수를 대표하는 인물의 상징성을 담아낸 데서 그 유래와 의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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