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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 주논개 (1574∼1593)

  • 주소 장수군 장수읍 논개사당길 41
  • 문의처 063-350-1637

소개

논개는 이름 , 호는 의암, 성은 주씨! 장수군 장계면 주촌마을에서 서당훈장인 아버지 주달문과 어머니 밀양 박씨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가문은 대대로 학덕이 높은 훈장집이고 동민의 존경을 받았던 뼈대 있는 집안이었다. 논개라는 이름은 아버지 신안 주씨(新安 朱氏) 주달문(朱達文)이 사주를 보고 지었던 이름인데 갑술년(甲戌年) 갑술월(甲戌月) 갑술일(甲戌日) 즉 개해, 개일, 개시에 태어났다고 해서 논개라는 이름을 지었고 역신도 귀한 딸을 샘하지 말라는 애탄 부모의 소원이 담겨진 이름이다. 화목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불행하게도 논개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갈 곳이 없어진 논개와 어머니는 당시 장수현감이었던 최경회(崔慶會)의 배려로 장수현청 관아에서 잔신부름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관아에서는 최경회현감의 부인이 나주(羅州)김씨한테 보살핌을 받아 충효열(忠孝烈)의 도리의 가르침도 받았다고 하며 김씨부인이 사망 후 최경회가 담양부사로 재직할 때 부부의 예를 올렸다. 세월 흐르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되자 모친상 상중이었던 최경회는 전라우도 의병장이 되어 의병들이 모집하고 500여명의 정예부대 골자(鶻字)부대를 편성하여 무주 우지치전투 대승을 비롯하여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1차 진주성 전투승리에 이끌게 된 데에 큰 공을 세워 1593년 4월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영전되어 진주성으로 입성했다. 논개도 또한 남편의 뒤를 따라 진주성으로 향했다. 6월19일에 왜군이 10만여 대군으로 침공하여 11일간의 전투 끝에 진주성은 무너지고 7만에 가까운 민관군이 사망되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남편이 순국한 후 논개는 남편의 나라를 지키자고 하는 뜻을 따라 기생으로 위장해서 촉석루에서 열린 일본군의 승전잔치에 들어가 왜장(倭將)케야무라 로쿠스케를 유인해서 촉석루 아래 남강에 있는 바위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 순국하였다. 그 후 논개가 투신한 바위에 의암(義巖)라는 글자가 새겨지고 바위와 논개를 동일시하여 논개의 호가 의암(義巖)로 되었다.

논개생가 : 장수군 장계면 의암로 558
문의 : 063-352-2550, 350-2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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