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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읍 역사문화탐방로

충절의 여인 논개와 함께 떠나는 장수 역사 문화 탐방

논개사당(의암사) - 지방기념물 제46호

장수군 장수읍 논개사당길41

조선 숙종4년(1678) 당시 장수현감 조종면이 전주감영에 가기 위해 말을 타고 천천면 장척마을 앞 바위 비탈을 지나는데, 길가 숲에서 졸고 있던 꿩이 말발굽 소리에 놀라 날아오르다 현감을 태우고 있던 말이 놀라 날뛰어 현감은 말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게 되자, 주인을 잃은 백씨는 자기가 잘못하여 현감이 죽었다
통곡하며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로 원한의 꿩과 말, 그리고 타루 두자를 바위벽에 그려놓고 자기도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한다.
그 후 1802년 장수현감 최수형이 주인에 대한 충성스런 마음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현지에 비를 세우고 타루비라 하였다.

논개영정

장수군 장수읍 논개사당길 41, 논개사당내 영정각

현재 의암사에 걸린 논개 영정은 지난 2008년 새롭게 그려서 안치된 작품으로, 충남대학교 윤여환 교수가 2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끝에 완성하였다.
제가 신안 주씨 후손들 중에 스무 살의 여성 평균 골격과 얼굴형을 참고해서 그렸다.
논개님 영정은 점을 일일이 찍어서 그려냈기 때문에 어느 방향에서 봐도 논개님의 눈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장수향교

장수군 장수읍 향교길 31-14

장수향교는 조선태종 7년(1407년) 선창리에 건립 되었던 것을 숙종12년(1686년) 현 위치로 옮겨 세워 현재가지 창건당시의 건물 양식대로 보존 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로서 건물의 구조가 다포형(多包形)이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 흔히 학문을 닦는 곳을 행단(杏壇) 즉 '은행나무 단'이라고 부르는데,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친 연유로,
우리나라에 유학이 들어오고 수많은 향교와 서원이 건립되면서 그 뜻을 기리고자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

장수향교 대성전 - 보물 제272호

장수군 장수읍 향교길 31-14

장수향교 대성전은 보물 제27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향교 건축의 대표적 건물 중 하나이다.
정면 3칸과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즉, 지붕면이 양면으로 경사를 지어 책을 반쯤 펴놓은 팔(八)자형으로 되어있는 건물로,
우리나라 성현 27분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6백 년이 넘은 건물로 우리나라 200개가 넘는 향교의 대성전 중에서 제일 오래된 곳이다.

정충복비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8호

장수군 장수읍 향교길 31-14

정유재란 때 왜적 한부대가 육십령을 넘어 장수로 침입하였다.
당시 향교를 지키고 있던 정경손은 대문을 굳게 닫은 채 마당 가운데 꿇어 앉아 경서를 읽으며 왜적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내 목을 먼저 베고 들어가라’고하였다.
이에 왜적들은 정경손의 당당한 기개에 감복되어 본성역물범(本聖域勿犯)이라는 쪽지를 써서 대문에 붙이고 물러갔다. 이로 인해 대부분 불에 타버린 다른 향교들에 비해 장수향교만은 온전히 보전될 수 있었다.
이러한 정경손의 의행을 기리기 위해 헌종12년(1846) 3월 장수현감 정주석이 이 비를 세웠다.

의암송 – 천연기념물 제397호

장수군 장수읍 호비로 10(장수군청 앞)

이 소나무는 현재 나무의 높이는 9m, 가슴높이의 둘레는 3.22m의 노거수로 수령이 약 400년쯤 되며, 그자태가 매우 아름답다.
1500년대 후반기에 당시 장수현감 최경회가 의암 주논개와 함께 심은 것으로 전해 지고 있다. 소나무로서는 보기 드물게 원줄기가 왼쪽으로 꼬여 수평을 이루고 있다.

방촌공원

장수군 장수읍 호비로 10(장수군청 앞)

장수읍 장수리에 아담하게 조성된 방촌공원은 조선의 명재상 황희 선생의 호를 따 지난 1996년 조성된 곳이다.
조선시대의 명재상이면서 중용의 미덕을 알았던 방촌 황희 정승의 본관이 바로 장수 이며, 태종의 신임을 얻다가 양녕대군의 세자폐위에 반대하여 장수의 장계면 월강리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공원에 들어서면 마치 옛 선비들이 지금도 시 한 수 읊조리며 먼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고 있을 법한 정자 한 동과 황희 정승의 동상이 단출하게 세워져 있다.

노하숲

장수군 장수읍 노하리 384

오래된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들어 찬 노하숲은 황희 정승의 아버지 황군서 선생이 장수 현감으로 부임해와 조성한 숲이다.
당시 황희 정승의 모친이 단봉산 자락에서 훌륭한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는데, 그 일대를 보호하는 숲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바로 노하숲 이었다고 한다.
조성된 지도 6백년이 훨씬 더 넘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노하숲은 오랜 역사와 산림자원으로서의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산림청으로부터 2002년 ‘아름다운 마을 숲’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창계서원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6호

장수군 장수읍 양선길 33-6

장수군에서 가장 오래된 서원으로 조선 숙종21년(1695)에 세운 창계서원은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55년 다시 세웠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로 상현재가 있는데, 앞면 3칸 옆면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모양인 팔작 지붕이다.
서원안에는 황희 정승을 중심으로 황수신, 강백진, 장응두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7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타루공원과 타루비(전라북도 기념물 제83호)

장수군 천천면 장자울로 4

조선 숙종4년(1678) 당시 장수현감 조종면이 전주감영에 가기 위해 말을 타고 천천면 장척마을 앞 바위 비탈을 지나는데, 길가 숲에서 졸고 있던 꿩이 말발굽 소리에 놀라 날아오르다 현감을 태우고 있던 말이 놀라 날뛰어 현감은 말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게 되자, 주인을 잃은 백씨는 자기가 잘못하여 현감이 죽었다.
통곡하며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로 원한의 꿩과 말, 그리고 타루 두자를 바위벽에 그려놓고 자기도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한다. 그 후 1802년 장수현감 최수형이 주인에 대한 충성스런 마음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현지에 비를 세우고 타루비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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