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학교, 금융기관, 병의원약국, 종교시설, 노인정, 시장, 사회복지시설 등 주요시설 정보를 나타냅니다.
구 분
공공기관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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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원약국
종교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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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유래
계북면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으로 백해군(伯海郡)(백이군<白伊郡>)의 관할구역에 있었으며 통일신라 이후 757년(경덕왕 16년)에 군·현의 명칭을 고침에 따라 백해군(伯海郡)을 벽계군(壁谿郡)으로 개칭한 뒤에도 계북면은 벽계군의 관할구역에 속했던 것 같으나, 솔개재(鳶峙(현재는 송치(松峙)(솔고개재)로 잘못 부르고 있음)이 북, 군(郡) 지금의 원양지구(원촌, 양악)과 안성면(무주군) 일부지역(주고, 마암)에는 양촌소(양악소)를 양악마을에 설치해서 벽계군(碧溪郡)이 관할했던 것 같다. 지금도 양악마을에는 동헌(東軒)터, 악(嶽)터, 저자(市場)터였었다는 곳이 구전되어 온다.
또한, 일설에는 삼한(三韓) 78부족국의 고을로 추측되는 양촌골(陽村邑)이 양악마을에 있었다는 전설도 있다.
아무튼 양촌소(陽村所, 陽岳所)는 벽계군(壁谿郡)이 벽계현(壁谿縣)으로 바뀌고 다시 장계현으로 명칭이 바뀐 뒤에 장수현에 병합될 때까지(근세조선 태종 13년) 지속됐던 것 같으며, 뒤에 소(所)가 없어지면서 원양지역은 계북면에 편입된 것 같다.
이렇듯 오랜 세월에 걸쳐 벽계군(壁谿郡), 벽계현(壁谿縣), 장계현(長谿縣), 장수현(長水縣), 장수군(長水郡)으로 고을의 명칭이 바뀌고 병합되기도 했지만 계북면은 위에 적은 군현의 관할 하에 있었다.
근세조선 말엽 이전에는 부군현내(府郡縣內)에 방을 두었으나 편의상 구역을 확정하는데 불과했다. 이 시기에 계북면(溪北面)은 임북방(林北坊)으로 부른 듯 하며, 근세조선 1895년(고종 32년) 전국에 23부 331군을 두는 지방관제개정에 따라 방을 면으로 고치면서 임북면이라 했고, 1917년 면제(面制) 공포(公布)로 계북면으로 개칭했다. 이때부터 면은 말단행정기구의 중요역할을 했다. 계북면의 지형은 태백정간(소백산맥)이 남쪽으로 힘차게 뻗다가 남덕유산이 우뚝 솟았는데 이 산의 서쪽 언저리에 자리 잡은 오목한 분지로 되어 있다. 서의 남쪽으로는 덕유산의 맏아들이라는 말글살, 악호봉, 추락봉 등이 동에서 서쪽으로 큰 줄기를 펼쳤으며, 깁재는 그 줄기이고, 그 줄기 넘어로 장계면과 인접했다. 동쪽은 덕유산 넘어로 경남 거창군 북상면과 인접했으며, 북쪽은 양악과 원호마을이 경계가 되어 무주군 안성면과 인접했다.
또한, 덕유산에서 서북쪽으로 솔개<연> 모양을 한 산줄기가 면의 중앙을 가로질렀는데 그 재를 솔개재(송치가 아님)라 하며 북쪽을 원양지역, 남쪽을 어매지역이라 한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세가닥 물줄기 중 한 줄기는 경관이 빼어난 토옥동 계곡을 거쳐 양악 큰 들의 젖줄 노릇을 하는 양악천이며, 또 한 줄기는 구멍보(천복)을 거쳐 갈벌들과 어전들의 젖줄 역할을 하는 어전천이고 마지막 한 줄기는 농초천으로 농소들을 적셔주고 매계 앞에서 어전천과 합류하여 매계천을 이룬다음 매계들과 월현들을 관개하고 금강 상류가 되어 천천으로 흐른다. 또한 계북면의 중심부를 남(장계) 북(무주)으로 관통하는 19번 국도는 면의 동맥역할을 한다.
다음은 재 이름이다.
(1) 장구멍재(매계~장현) (2) 중재(장현~월전) (3) 지마재(어전~백암) (4) 솔개재(어전~원촌) (5) 깁재(계북<압곡> ~ 장계<범덕골>)이다.